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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자’의 마음을 돌보다-ACT for Caregi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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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자 마음을 돌보다-ACT for Caregivers

_서울재활병원 ‘제2회 장애인 가족 돌봄자를 위한 수용전념치료 국제 워크숍’

 

🌿누구나 ‘돌봄자’가 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을 돌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린 자녀, 나이든 조부모님과 부모님, 병이나 장애가 있는 가족이나 연인을 돌보기도 합니다. 일시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결국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엔 ‘돌봄자’가 됩니다.

하지만 돌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가족을 돌보느라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식조차 가지지 못해 신체적·정신적 피로를 호소하는 보호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돌봄’은 가족 안의 책임으로만 여겨졌기에, 이들이 겪는 고통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짊어지는 돌봄

서울재활병원은 지난 9월, 장애인 가족 돌봄자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장애인 가족 돌봄자를 위한 수용전념치료(ACT for Caregivers)’의 제2회 국제 워크숍을 6일간 진행했습니다. 올해로 두번째를 맞이한 이번 행사는 장애인 가족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이번 워크숍에는 장애인의 가족, 심리 및 가족지원 전문가, 지난해 수료자 등 총 52명이 참여했습니다. ‘장애인 가족 돌봄자를 위한 수용전념치료(ACT for Caregivers)’ 프로그램을 개발한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과 케네스 펑(Dr. Kenneth Fung) 교수가 직접 내한해 현장에서 워크숍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 장애인 가족 돌봄자를 위한 수용전념치료(ACT for Caregivers)’은 무엇일까요?

‘장애인 가족 돌봄자를 위한 수용전념치료(ACT for Caregivers)’는 *수용전념치료(ACT)를 기반으로 한 장애인 가족 심리지원 프로그램으로, 보호자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심리적 유연성을 증진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ACT) : 불안과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심리적 유연성을 키우는 심리치료 기법.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회복 탄력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수용전념치료(ACT)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나 생각을 피하거나 없애려고 할수록 심리적 고통은 더 심해지기에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인생의 고통을 수용하고 자기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찾아내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케네스 펑 교수는 ACT가 인간의 고통을 다루는 것에 매우 유용하기에 특정 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인생에서 도전과 실패, 실수와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장애인 가족 돌봄자에서 모두를 위한 돌봄자로

이번 워크숍은 전문 임상가와 장애인 보호자가 2인 1조가 되어 협력하는 형태로 진행하였습니다. 보호자가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동료 가족 나아가 지역사회 돌봄자를 지원하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 최초의 ‘ACT for Caregivers’ 공식 촉진자 12명이 탄생했습니다. 이들은 향후 동료 보호자와 지역사회 참여자를 대상으로 ACT 기반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부산과 대구에서 활동 중인 심리 전문가들도 처음으로 참여하면서, ACT 프로그램의 전국적 확산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던 돌봄자 지원 활동을 지역 중심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 숨겨진 돌봄자, ‘영 케어러’를 만나다

최근 발간한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중증장애 가정의 영케어러 지원 연구』에 따르면, 장애 가족을 돌보는 청년, ‘영 케어러(Young Carer)’의 상당수는 10대 후반부터 돌봄을 시작해 매일 일상적인 돌봄 노동에 노출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정책은 장애 아동을 둔 부모 중심으로 설계되어 ‘영 케어러’ 즉, 장애인 부모·조부모를 돌보는 청년이나 형제자매 돌봄자는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이번 워크숍에선 비장애 형제자매 돌봄자를 위한 ‘ACT for Caregivers’ 과정을 국내 최초로 개설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족을 돌보는 이들 형제자매들은 학업이나 자기개발, 휴식 등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관심에선 상대적으로 멀어지는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이러한 형제자매들을 위한 ‘ACT for Caregivers’ 과정의 개설은 심리적 회복과 자기 돌봄의 기회를 제공하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나누는 돌봄, 함께 회복하는 사회로

참여자 중 한 분은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뿐 아니라, 같은 길을 걷는 보호자들과 마음을 나누는 힘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재활병원의 ‘ACT for Caregivers’는 이제 단순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넘어, ‘돌봄을 함께 짊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변화의 시작점이 되고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돌봄의 짐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지탱하는 이 여정에 서울재활병원 그리고 엔젤스헤이븐도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달린 1.4km, ‘포용 달리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달린 1.4km, ‘포용 달리기’ 1080 1080 관리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달린 1.4km, ‘포용 달리기

_엔젤스헤이븐 국제개발협력센터, 베트남 하노이 포용 달리기 캠페인

 

🌈 ‘One Journey, Different Abilities 무한한 여정, 다양한 능력’

지난 9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선 엔젤스헤이븐과 베트남 전 국민을 위한 교육연합회(VAEFA), 국립특수교육센터(NCSE)가 공동 주최한 ‘One Journey, Different Abilities (무한한 여정, 다양한 능력)’ 포용 달리기 캠페인이 열렸습니다. 이번 행사는 ‘국제 농인 주간’과 ‘세계 수어의 날’을 기념하여 장애 아동의 포용교육 인식 확산을 목표로 진행되었습니다.

총 546명이 참여한 가운데, 304명의 청각·시각·발달·지체 장애인이 자원봉사자와 전문 페이서의 도움을 받아 1.4km 코스를 자유롭게 달렸습니다. 참가자들은 페이서의 안내를 따라, 가족과 자원봉사자의 격려 속에서 각자의 여정을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달리는 날이 올 줄이야!”

행사 후반에는 참가자와 가족들의 소감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한 시각장애 소녀의 손을 잡고 함께 달린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딸과 함께 달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이렇게 함께 뛸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한 자원봉사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서로 모르던 사이였지만, 몇 킬로미터를 함께 달리고 나니 마음이 통하더라고요.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 예술로 전한 포용의 메시지

개막식에서는 청각장애 아동들의 수어 공연 ‘베트남 – 자랑스럽게 미래로 나아가다’가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음악과 수어가 어우러진 이 공연은 청각장애 아동들이 역경을 이겨내며 성장하고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꿈을 표현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달리기 행사가 끝난 후 이어진 문화공연에선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꾸민 다채로운 무대가 이어졌습니다. Sao Mai 센터의 지적장애 학생들은 수백 번의 연습 끝에 완성한 노래를 선보였고, COHO 센터의 농인 교사 Trần Thị Dung과 청각·시각장애 학생 Đỗ Thị Thiên Ngọc이 함께한 무용은 많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Nguyễn Đình Chiểu 학교 시각장애 학생들의 공연은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전통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며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의 모습은 장애인도 적절한 지원과 격려 속에선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 변화가 시작되는 공간

행사장 곳곳에는 성교육, 특수교육, 수공예 체험 부스가 마련되어 참가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시각장애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 교구 전시, 장애인 작가들의 수공예품과 미술 작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놀이 프로그램 등 다양한 체험이 어우러지며 진정한 포용의 장이 완성되었습니다.

농인 단체 ‘Listen by Eyes’ 창립 10주년 기념식도 함께 열려, 지난 10년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포용 활동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엔젤스헤이븐, 베트남 특수교육의 변화를 이끌다

베트남에선 약 700만 명(전체 인구의 약 6%)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등록되지 않은 장애 인구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이들 상당수는 아직도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엔젤스헤이븐은 2021년부터 KOICA의 지원을 받아 “베트남 국립특수교육원 특수교육 역량강화 사업”을 수행하였고, 이후 후속 사업을 통해 베트남 통합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엔젤스헤이븐은 특수교육 자료 개발, 특수교사 양성, 교육 기자재 지원 등을 통해 현장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베트남 국내외 전문가들과 함께 특수교육 정책 컨퍼런스를 개최해 지속 가능한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 포용교육으로 향하는 첫걸음

이번 ‘포용 달리기’는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학교 현장이 진정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식과 마음이 바뀌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엔젤스헤이븐은 이번 행사에 ‘포용’이라는 단어를 더했습니다. 단순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어울리는 사회를 꿈꾸기 때문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달리고, 웃고, 손을 맞잡았던 이날의 ‘포용 달리기’는 엔젤스헤이븐이 그려온 진정한 포용교육의 첫걸음이었습니다.

“누구나 나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나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1080 1080 관리자

“누구나 나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비전꿈터 김창민님 이야기

뇌병변장애란 뇌 손상으로 인해 운동, 언어, 인지 등에 어려움이 생기는 장애로, 손상 부위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외상성 뇌 손상, 뇌졸중, 뇌성마비, 유전적 요인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증 뇌병변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의료비 부담, 사회적 참여 제약, 과도한 돌봄 부담 등 많은 어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엔젤스헤이븐 산하 노원 비전꿈터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뇌병변장애인과 가족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가족들이 잠시 휴식을 얻는 동안, 장애 당사자는 센터에서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비전꿈터를 이용하던 김창민님은 센터와 함께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도움을 받던 이용자에서, 이제는 다른 이들을 돕는 후원자가 되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창민님이 직접 써주신 글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눈으로 소통하고 함께 나눈다는 것의 의미

저는 눈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김창민입니다. 눈동자를 위아래로 움직여 의사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4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노원구에서 진행하는 장애인친화병원 의료진 장애이해교육 보조강사로 일을 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의미는 모르지만 제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의료진과 눈으로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는 것이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분들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합니다. 노원구청 장애인친화팀 김기곤 팀장님께서 알려주셨는데, 제가 병원 원장님을 기쁘게 해드렸다고 하더군요. 저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병원 원장님을 보고 활짝 웃어드렸는데, 중도중복의 와상 뇌병변장애인 진료를 처음 경험한 병원장님에게는 그것이 아주 기쁘고 뿌듯한 기억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해서 최선을 다한 게 뿌듯했습니다.

그 결과 보조강사 강사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고나서 돈을 번다는 것은 무척 신나는 일이예요. 저는 직업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에 돈을 버는 기회가 매우 적습니다. 그래서 강사비가 들어오면 비전꿈터를 함께 이용하는 형, 동생들과 비전꿈터의 친절한 직원들, 보조지원자들을 위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쏘고 싶었습니다. 가끔 돈이 생길 때 주변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는데, 매우 신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센터에서 새로운 걸 제안해 주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는 걸 ‘후원’으로 대신해보자고 했어요. 사실 후원이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내가 의미 있게 번 돈으로 내 친구들에게 맛있는 사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말이 멋지게 들렸어요. 그래서 센터의 제안에 동의했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엔젤스헤이븐에 온라인으로 일시 후원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온라인 후원 과정은 센터장님과 아버지가 저를 대신해 진행하고 그 결과를 저에게 보여줬습니다. 아직은 후원이 어떤 의미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한 일이 이렇게 어딘가에 알려진다는 것도 신기하고 새롭기만 합니다. 무언가 매우 잘한 행동 같고 친구들이 저로 인해 잠시나마 즐겁기를 바랍니다.

 

 

나눌수록 더 커지는 기쁨

창민님의 이야기는 나눔이 특별한 누군가만의 몫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창민님의 이야기 속 병원과 구청, 비전꿈터와 엔젤스헤이븐, 그리고 우리 곁의 장애 당사자분들처럼 모두가 힘을 모을 때 나눔은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함께할수록 기쁨도 커지고, 그 따뜻함은 또 다른 이웃에게 전해집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마음을 보탤 때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집니다. 오늘도 엔젤스헤이븐은 창민님과 함께, 더 큰 나눔을 만들어가려 합니다.

 

 

‘휠꾸’, 나를 긍정하는 작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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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꾸’, 나를 긍정하는 작은 시작

서울재활병원 ‘휠꾸 워크샵’

‘휠꾸’를 아시나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폰꾸’(스마트폰 꾸미기)는 익숙하지만, ‘휠꾸’는 조금 낯선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휠꾸’는 ‘휠체어 꾸미기’라는 뜻으로 2022년 유튜브 ‘굴러라 구르님’ 채널에서 김지우님이 처음 소개한 단어입니다.

“나에게 휠체어는 휴대폰보다 훨씬 중요한 물건인데, 왜 한번도 꾸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휠꾸’는 휠체어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나를 표현하는 무대’이자 ‘자기 긍정의 수단’으로 만들었습니다.

서울재활병원에서는 장애 청소년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자조 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자조모임의 일환으로 진행된 ‘휠꾸 워크숍’은 ‘휠꾸’의 창시자 유튜브 ‘굴러라 구르님’ 김지우님이 직접 참여하여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휠토핑’과 함께하는 ‘휠꾸 워크숍’

지우님은 장애인의 일상과 경험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전달하는 유튜버이자, 에세이와 그림책을 쓴 작가 그리고 ‘휠토핑’의 제작자이기도 합니다.

‘휠토핑’은 지우님이 직접 제작한 휠꾸용 아이템으로, 토핑 올리듯 쉽게 휠체어를 꾸밀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해외에는 다양한 휠꾸 아이템이 있지만 한국에서 구하기 어렵거나, 비싼 가격과 큰 부피 때문에 특히 청소년들은 구매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기존 ‘휠꾸’ 제품으로 잘 알려진 ‘스포크 가드’(poke guard, 바큇살에 부착하는 둥근 모양의 판, 손가락이나 링거 줄 등이 끼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크고 무겁기에 휠체어 이용 당사자들이 직접 탈부착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휠토핑’은 작은 크기, 펠트와 밸크로 등의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져 있기에 휠체어를 탄 당사자들이 탈부착하기가 쉽고 보관도 용이합니다.

이번 워크숍은 누구나 쉽고, 간단하게 휠꾸에 도전할 수 있는 이 ‘휠토핑’을 이용해 진행되었습니다. 각자 꾸민 휠체어를 자랑하며 서로의 작품을 비교하는 동안,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자기 긍정’을 만드는 ‘휠꾸’의 힘

“휠체어는 나의 일부이자 삶의 동반자예요. 꾸미는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색과 모양을 담으면 그 순간부터 휠체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작품이 됩니다.”

직접 꾸민 자신의 휠체어는 더 애착이 가고 자연히 아이들이 자신의 휠체어를 더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장애 청소년들의 자존감과 자기 긍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지우님은 역시 어린 시절, 오랜 기간동안 휠체어를 미워했다고 합니다. 남들과 다름을 드러내는 상징 같았고, 사진을 찍을 땐 일부러 휠체어를 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휠꾸’를 하고 나니 휠체어는 부끄럽고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개성이 되었습니다.

지우님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태도로 ‘자긍심’을 꼽았습니다. 장애가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란 쉽지 않지만,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장애를 긍정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휠꾸’는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내가 직접 꾸민 물건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나 있는 그 자연스러운 마음이 내가 꾸민 휠체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나아가 내 장애와 내 삶을 긍정하는 일이 되었다고 지우님은 말합니다.

“나와 비슷한 선배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린 시절부터 서울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지우님은 현재 서울재활병원 뇌병변장애 청소년 자조모임의 강사 그리고 서울재활병원 수도권 공공어린이재활관리협의회 위원으로도 위촉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지우님이 이렇게 꾸준하고 활발히 활동하실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장애 청소년들입니다. 청소년 자조모임 강사로서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도 그 시절 “나와 비슷한 선배가 곁에 있었다면 얼마나 든든했을까”라는 아쉬움을 자주 떠올렸기에, 더욱더 아이들에게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먼저 길을 먼저 걸어본 선배로서, 지우님은 청소년들에게 작은 용기와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곁에서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함께하는 마음은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서울재활병원 자조모임과 휠꾸 워크숍에서 피어나는 이 만남들이 아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더 당당하게 자신을 긍정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거울 같은 만남

거울 같은 만남 1080 1080 관리자

거울 같은 만남

은평천사원과 미앤코리아의 특별한 동행

 

엔젤스헤이븐의 은평천사원은 1959년 전쟁고아를 돌보기 위해 시작되어, 그 긴 역사만큼이나 천사원을 거쳐 간 봉사자의 수도 어마어마 합니다. 그 긴 역사 속에서도 특히 소중한 인연이 있습니다. 바로 해외 입양인을 돕는 비영리단체 미앤코리아(Me&Korea)와의 인연입니다.

 

미앤코리아와 은평천사원의 만남

미앤코리아는 해외로 입양된 한국 입양인들을 돕는 비영리단체입니다. 입양인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갈 수 있도록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번역이나 친가족 찾기, 한국 방문 등을 지원해왔습니다. 특히 매년 여름 열리는 ‘모자이크 투어’는 전 세계 입양인들이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뿌리를 찾고, 문화와 역사를 배우며, 어린 시절 머물렀던 시설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는 특별한 행사입니다.

이 투어를 통해 2016년, 은평천사원과 미앤코리아가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봉사활동을 해왔지만 천사원 아이들의 맑은 미소가 유독 더 마음에 남았다는 미앤코리아 입양인분들은 그 후 매년 천사원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생일 선물과 케이크, 크리스마스 선물과 근사한 식사, 미국 방문 시 홈스테이 제공, 장학금 기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달해 주고 계십니다. 매년 5월에는 천사원에 직접 방문하여 아이들을 위한 즐거운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하기도 합니다.

 

 

파주 ‘엄마품동산’으로의 초대

올해 5월도 어김없이 천사원을 방문했던 미앤코리아가 6월엔 반대로 아이들을 파주 ‘엄마품동산’으로 초대했습니다. ‘엄마품동산’은 미앤코리아와 파주시가 손잡고 2017년부터 조성에 나서 올해 완공되었습니다. 미군 기지였던 캠프하우스 부지에 조성되었고,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기억과 치유의 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해외입양인 750명의 이름표가 걸린 ‘기억의 벽’, 해외 입양인 900명의 사진과 사연이 전시된 ‘평화기념관’, 입양인 작가들이 그린 벽화 ‘블로섬’(bLOSSom)까지, 이곳은 입양인들의 삶과 기억이 담긴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천사원 아이들을 초대된 곳은 ‘2025 한국 입양인 평화 대축제’의 비공식 전야제 행사였습니다. 미앤코리아 입양 가족 150여 명과 파주 시민 70여 명, 그리고 은평천사원의 아이들이 함께하는 큰 행사였습니다.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선생님들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언어가 달라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표정과 몸짓으로 반가움을 부지런히 표현하는 아이들 덕분에 미앤코리아 입양인분들도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엄마품동산’은 아이들을 흐뭇한 웃음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어른들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7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의 과제

‘엄마품동산’이 위치한 파주는 한국전쟁 이후 부모를 잃은 아이들, 그리고 미군 기지촌에서 태어나 해외로 입양을 떠나야 했던 아이들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입양으로 새 가정을 찾은 아동은 약 25만 명에 달합니다. 최근 입양 건수는 줄고 있지만, 2024년에도 212명의 아이들이 입양으로 새 가족을 만났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외 입양아를 보낸 나라였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2020년에도 한국의 입양 규모는 세계 3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보호대상아동 통계를 보면,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아이들은 국가와 지역사회 그리고 이웃의 돌봄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24년 한 해만 하더라도 1,978명의 아동이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는 보호대상아동으로 집계되었습니다. 과거 전쟁의 상흔으로 시작된 아동 보호가 이제는 학대, 빈곤, 부모의 사망이나 이혼, 질병 등 다양한 이유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숫자 속에 담긴 의미는 분명합니다. 7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의 곁에는 보호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서로의 모습을 비추는 만남

은평천사원 아이들과 해외 입양인들의 만남은 그 자체로 특별합니다. 입양인들은 아이들에게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발견하고, 아이들은 입양인 선생님들의 모습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봅니다. 서로의 삶을 비추어 보는 이 시간은 아이들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입양인들에게는 보람과 자긍심을 안겨주었습니다. 천사원 아이들이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미앤코리아의 따뜻한 마음이 오래도록 곁에서 함께하길 바랍니다.

 

 

40년의 동행, “후원은 나를 돌보는 길이었습니다”

40년의 동행, “후원은 나를 돌보는 길이었습니다” 1080 1080 관리자

40년의 동행, “후원은 나를 돌보는 길이었습니다”

엔젤스헤이븐의 숨은 영웅, 신경숙 후원자님 인터뷰

 

엔젤스헤이븐은 이번에 무려 40년 동안 아이들과 동행해 주신 한 분의 후원자님을 만났습니다.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다고 하셨지만, 저희에게 후원자님은 오랜 시간 아이들을 지켜주신 든든한 영웅이셨습니다.

엔젤스헤이븐의 숨은 영웅, 신경숙 후원자님을 소개합니다. 한성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신 신경숙 후원자님은, 지난 40년간 정기 후원은 물론 장학금 지원을 통해 엔젤스헤이븐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지켜주셨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엔젤스헤이븐의 아이들 역시 후원자님의 제자이기도 한 셈입니다.

신경숙 후원자님과 엔젤스헤이븐은 아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기부를 하며 꿈꿔왔던 미래를 이루셨다는 후원자님의 이야기는 기부가 도움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도 삶의 동력이자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합니다. 또 ‘이기적인 후원’이라는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 표현 속에는 후원이 가진 진짜 가치를 꿰뚫어 보는 혜안이 숨어있기도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신경숙 후원자님과 엔젤스헤이븐의 특별한 동행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까요?

 

 

Q. 안녕하세요, 후원자님.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종종 저 혼자 엔젤스헤이븐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인연이 시작된 지 사십 년이 되었으니까요. 지금은 직장이었던 학교에서 퇴직했지만, 엔젤스헤이븐과의 인연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Q. 어떻게 엔젤스헤이븐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는지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1980년대 <2000년>이라는 잡지가 있었습니다. (기관지였던) 이 잡지에 조규환 원장님, 아이들의 사진 그리고 은평천사원 이야기가 꽤 길게 실렸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4면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일을 하지 못했고, 돈도 없어 한 달에 보름은 천 원짜리 한 장을 책꽂이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기만 할 때였습니다. 그게 매번 그달의 마지막 남은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막막하기만 할 때였죠. 그때 그 기사를 봤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기도 이렇게 버거운데, 저렇게 많은 아이들을 돌보는 원장님과 천사원 선생님들의 모습이 저와 너무 대비되었습니다. 한편, 그 마음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출세를 다 내려놓고 이런 길을 선택하시다니. 그리곤 방안을 서성이며 그 기사를 몇 번이나 다시 읽고 생각해봤습니다.

처음으로 내게도 아직 가진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사원 아이들도 내 수준만큼은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미치자, 천사원에 편지를 보내고(그때는 이메일이 없었죠),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생활비가 바닥을 보일 게 뻔하니, 일단 후원금을 먼저 떼어놓고 시작했습니다.

조규환 회장님과 아이의 사진(좌), 80년대 후반 천사원의 모습(우)

 

Q. 힘든 시절에도 후원을 이어가며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내셨다고 들었습니다. 후원자님께 그 약속과 나눔은 어떤 의미였는지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후원의 첫 결심은 ‘설마 십 년 후에도 지금처럼 살고 있을까? 넉넉잡아 십 년 후엔 내가 번 수입으로 후원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제게 십 년은 마치 아득한 먼 미래로 여겨졌죠. 저 자신에게 십 년이라는 아주 긴 시간의 여유를 주며, 그사이 열심히 살아보자 했었습니다.

그로부터 십 년 후, 아니 딱 십 년이 되었을 때, 대학 전임 교수 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설마, 설마, 설마 정말 십 년?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한 달의 오차도 없는 십 년이었습니다. 옛 기억이어서 정확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당시 제 계산으론 딱 십 년이었습니다. 아, 이런! 정말 십 년만에 내가 원했던 직업을 갖게 되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오 년으로 상상해 볼 걸.

하지만 십 년의 후원이 제 직업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딱 알맞은 십 년이었습니다. 제가 자라나기까지, 딱 십 년이 필요했습니다. 막연했던 그 십 년의 약속이 없었으면, 제가 그토록 원했던 일자리도 없었죠. 너무나도 정확한 삶의 시간들입니다.

Q. 긴 시간 동안 엔젤스헤이븐의 아이들을 위해 후원해 주셨습니다. 특히 장학금 후원은 아이들에게 많은 배움의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셨을 때도 후원만큼은 멈추지 않으셨는데, 그렇게 후원을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1995년 전임교수가 되었고, 1997년 IMF가 터졌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치고 신문 기사들은 연일 암울한 기사를 올렸지만, 저는 체감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신났죠. 이렇게 사람의 마음은 얄팍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 뉴스가 저를 휘감았습니다. 가족들이 무너지고 아이들마저 떠돌게 된 상황. ’아,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사회에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 자식과 이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갑자기 다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생각하다가 고등학생, 중학생 두 아이를 불러놓고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들이 학원을 안 가면, 천사원의 아이 한 명을 대학에 보낼 수 있어. 동의해 줘!’ 아이들은 너무 좋아했습니다. 천사원의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이 학원에 안 갈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해서 후원에 두 가지 변화가 왔습니다. 하나는 기존 후원금을 네 배로 늘리는 것, 다른 하나는 고교 졸업 후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들을 그때는 이렇게 불렀죠.)의 등록금을 보태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장학 후원을 했다기보다, 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게 되었을 때를 미리 준비했던 것입니다. 매우 ‘이기적인 후원’이었죠. 지금도 나와 자식을 돌봤던 이 방법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엔젤스헤이븐이 돌보고 있는 자립준비청년들(좌), 자립준비청년 교육 현장(우)

 

Q. 후원하는 기간 동안 접하신 기관 소식이나 아이들 소식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으셨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때마다 보내주시는 아이들 소식과 사진은 늘 저희 집 탁자 위에 놓여 있습니다. 볼 때마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는 있지만, 그다지 외향적이지 않은 탓에 아이들을 직접 만나볼 엄두는 내지 못했습니다.

어느 해 추석 즈음, 엔젤스헤이븐을 잠시 들렸습니다. 숫기가 없는 편이라 아무도 만나지 않으려 했는데, 그만 조준호 대표님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대표님은 시설 몇 곳을 보여주셨습니다. 처음엔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후원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소개까지 해주시다니. 그런데 여기저기 돌아보는 사이, 제 마음엔 점점 다행스러움과 감사함이 들어찼습니다. 처음 후원을 결심했을 때 엿보았던 천사원의 진심 어린 보살핌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제 안에서 ‘돌봄’, ‘후원’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낡은 생각에 머물러 있었는지, 그에 비해 이곳은 원생들에게 ‘한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누리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애써왔는지를 깨닫고는 크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엔젤스헤이븐의 해외 사업을 알아보려 홈페이지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다가 엔젤스헤이븐이 그사이 이 시대의 필요에 맞춰 움직여온 새로운 자취들을 발견했습니다. 게시물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동영상까지 전부 놓치지 않고 끝까지 봤죠. 또 한 번 탁 내리치는 죽비를 맞은 듯했습니다. 나는 퇴직했고, 이렇게 삶이 조금씩 끝을 향하는가 싶었는데, 엔젤스헤이븐은 그간 ‘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더 넓고 깊이있게 나아간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것입니다. 내가 생각한 후원의 의미는 옛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엔젤스헤이븐의 돌봄은 엄청나게 성장해 있었던 거죠. 작은 손길들을 모아 이렇게 ‘진짜 돌봄’을 위해 움직여온 엔젤스헤이븐의 역사에 감탄했습니다. 또 한 번 인생을 배웠습니다.

 

엔젤스헤이븐 우간다 해외 사업 현장의 사진

 

Q. 후원의 의미와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후원자님으로서, 혹시 다른 분들에게도 후원을 권유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또 어떤 점이 다른 분들에게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제게 후원은 타인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적극적으로 돕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나를 돌보기 위한 후원’을 계속해 왔습니다. 모든 후원이 예외 없이 이런 이기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엔젤스헤이븐이 거기에 있어, 나 대신 해주신 그 모든 일들 덕분에 오늘 나와 내 가족, 내 주변이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쉽고도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Q. 수많은 기관 중 엔젤스헤이븐을 택해, 함께 오랜 시간 동행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기관에 특별히 바라는 점이 있으실까요?

엔젤스헤이븐이 지금 보여주시는 ‘변화’ 자체가 제게는 감동입니다. 지금처럼 때맞춰 변화를 ‘거듭’ 해주시면 저 또한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 한 명을 그 사람 인생 자체의 존귀와 권리로 봐주셨던 그대로 해주시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엔젤스헤이븐의 존재 이유지요.

 

Q. 마지막으로, 후원하고 계신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일 어려운 말이네요. 그래도 한마디 한다면, 많이 배우라고, 억지로라도 배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직 엔젤스헤이븐의 지붕 아래 있을 때, 많이 많이, 더 많이 배워두면, 앞이 보이는 날이 올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려웠던 시절에도 “아이들도 내 수준만큼은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작은 결심은,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지켜온 큰 동행이 되었습니다.

신경숙 후원자님은 후원을 “타인을 돕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보는 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기적인 후원’이라 표현하셨지만, 그 속에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후원자님의 후원은 아이들이 잘 자라나야 내 가족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 동시에 미래 세대를 향한 책임감과 사랑이 담긴 따뜻한 실천이었습니다. 결국 후원은 아이들을 위한 일이자 동시에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갈 세상을 지켜내는 길이었습니다.

엔젤스헤이븐은 그 진심이 헛되이 흘러가지 않도록 다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후원자님의 마음을 아이들에게 배움과 돌봄, 그리고 존엄을 지켜주는 구체적인 지원으로 이어왔습니다. 덕분에 후원은 한 아이의 삶을 지키는 것을 넘어, 사회를 조금 더 따뜻하게 바꾸는 힘이 되었습니다.

후원은 누군가를 단순히 돕는 일이 아니라, 삶을 함께 나누고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약속입니다. 신경숙 후원자님의 40년 동행은 그 소중한 가치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엔젤스헤이븐은 앞으로도 이런 특별한 동행들과 함께 아이들의 내일을 지켜 나가겠습니다.

“실천 없이 이루어지는 사랑은 없어요!”

“실천 없이 이루어지는 사랑은 없어요!” 1080 1080 관리자

 

“실천 없이 이루어지는 사랑은 없어요!”

가이오국수 강철 대표님 인터뷰(2)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가을 저녁, 엔젤스헤이븐은 ‘가이오국수’의 대표님이신 강철 후원자님을 만났습니다. 은평구 맛집으로 유명했던 ‘가이오국수’는 어느덧 그 유명세가 점점 퍼져나가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 청주에도 지점이 생길 만큼 유명한 프랜차이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새로 생길 분점 때문에 하루 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강철 후원자님은 바쁜 와중에도 잠시 틈을 내어 엔젤스헤이븐에게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강철 후원자님과 아동푸른센터의 특별한 인연, ‘가이오 삼촌 데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드립니다.

 

 

Q. 아동푸른센터 아이들 대상 식사 봉사 ‘가이오 삼촌 데이’를 새로 시작하셨어요. 새로운 봉사활동을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는지 이유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그냥 저는 따르는 것뿐이에요. 대단하게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저는 가난이 너무 자연스러웠고, 없이 살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동병상련의 마음에서 시작된 거죠. 아이들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제 이웃에게 필요한 걸 준 것뿐이에요.

“내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을 말로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실천 없이는 사랑을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인을 보며 사랑한다고 골백번 말하는 것보다 아플 때 약 한 번 사러 가는 게 훨씬 더 사랑을 느끼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제 기부의 원동력은 “실천 없이는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라는 생각이 아닐까 싶어요.

 

 

Q. 아동푸른센터의 아이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내셨어요.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화가 있으셨다면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축구화를 선물해 줬던 친구요. 그 아이에게 왜 축구화를 선물해 줬냐면, 그 아이가 사고뭉치라는 게 제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역시 얘길 들어 보니까 악동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일부러 그 아이에게 “너 축구 선수 되고 싶니?” 하고 물어본 거예요. 그리고 축구화를 선물해 줬죠. 저는 이 축구화 때문에 이 아이가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어요. 이 축구화가 그 아이의 인생을 다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마음 한편에 확실히 박힐 거란 걸 믿었어요. 삐뚤어지고 싶을 때마다 분명히 이 축구화 생각이 날 거라는 확신이 들었죠. 그냥 사준 게 아니고, 약속을 하나 했어요. “이 축구화는 삼촌이 그냥 주는 축구화가 아니야. 정말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면 이 축구화를 신고 정말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 의미 있게 신었으면 좋겠어.” 이 초등학생 개구쟁이가 그 말의 의미를 확실히 알아들었을 린 없을 것 같지만 마음 한편에는 박혀 있을 거예요. 제2의 손흥민, 제3의 손흥민은 그렇게 해서 나오는 거죠. 혹여나 담배도 배우고, 술도 배우고, 못된 걸 배워갈 때 그 축구화, 그 축구와의 추억이 걔를 바른길로 돌아오게 만들 거예요.

또 의미 있었던 건 그림.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해 준 그 친구는 진짜 저에게는 엄청난 기억이었고 ‘다시 하고 싶다, 또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라는 강렬한 동기부여를 받았습니다. 제가 사랑을 주러 갔는데, 오히려 아이들한테 제가 사랑을 받은 거죠.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저는 그게 봉사활동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그런 매력에 관심이 없죠. 한 번 겪으면 이건 헤어날 수가 없는데 말이에요!

 

 

Q. 아이들을 만나기 전과 후, 후원자님의 생각이나 마음에 어떤 변화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나를 위한 삶에서 이제 그들을 위한 삶으로 바뀌었어요. ‘소원’이라는 찬양이 있어요. 그 찬양의 내용처럼 나의 가는 길을 비추기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추는 그런 삶을 살고 싶고,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는 오름직한 동산이 되고 싶은 거예요. 그게 가이오 삼촌이 추구하는 우리 아동푸른센터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에요. 오름직한 동산이 돼서 그 아이들의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진짜 삼촌이 되어 주고 싶은 거죠. 그리고 나의 가는 길만 비추기보다는 그 아이들에게 가는 길을 비춰줘서 그 아이들의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Q. 일회성 만남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8월에도 계속 ‘가이오 삼촌 데이’가 이어졌습니다. 국수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메뉴도 준비해 주셨는데, 반응이 무척 뜨거웠습니다. 앞으로도 이 활동을 계속 이어가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그럼요. 이제 카레 만들러 가야죠. 고민도 하지 않았습니다. 벌써 다음 메뉴 준비하고 있어요. 그다음은 이제 짜장을 하려고요.

 

 

Q. 가이오 삼촌 데이’라는 새로운 나눔에 엔젤스헤이븐이 동행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앞으로도 강철 후원자님과 함께 만들어 나갈 따뜻한 변화가 더욱 기대됩니다. 혹시 엔젤스헤이븐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실까요?

기부를 안 해도 되는 기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열심히 기부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는, 많은 기부자로 채워진 그런 단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열심히 기부를 하는 이유는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마중물이 되고 싶은 거예요. 물론 엔젤스헤이븐의 회원 중에서도 저보다 더 많은 기부, 저보다 더 많은 재능 기부를 하시는 분이 있을 거예요. 근데 더 많은 사람들이 동기부여를 주고,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막 늘어나서 엔젤스헤이븐이 기부금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는 단체가 됐으면 좋겠어요.

 

 

Q. 대표님의 답변을 들으니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은 것이 생겼어요. 후원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아까 말씀드렸던 “내일은 늦으리”. 내일은 늦어요. 그래서 항상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먼저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죽기 전에는 모두 다 착한 일을 하려고 하고, 갑자기 돈을 내면서 좋은 일에 쓰라고 하죠. 근데 매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면 기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보장된 내일은 없어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내일이 오는 걸 너무 당연히 여기고 있어요. 하지만 내일 아침에 눈을 뜨고 감는 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거잖아요. 오늘 건강해도 내일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에요.

 

 

Q.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그냥 딱 한 마디. “얘들아 사랑해.” 삼촌이 너희들을 진짜 사랑한다. 너희들이 너무 보고 싶고, 너희들 맛있는 것도 해주고 싶고, 고민이 있으면 들어주고 싶고, 같이 수다도 떨고 싶고, 재밌는 프로그램도 해보고 싶고, 또 맛있는 거 먹고 싶으면 만들어 주고 싶고,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 모든 마음을 다 합쳐서 “얘들아 사랑해” 그 한마디로 다 정리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냥 애들한테 사랑에 빠졌어요. 진짜 사랑에 빠졌어요. 이 사랑이 식지 않도록 노력하려고요. 아동푸른센터가 폐업할 때까지! 이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에요. 그 날이 오면 그런 시설이 필요 없어진 사회라는 거잖아요.

 

 

서울특별시 아동푸른센터는 서울 전역에서 일어난 아동 학대 사건에 대응하며, 학대 피해를 당한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장시간의 학대와 방임을 당한 아이들에겐 병원 치료나 심리 상담뿐만 아니라 ‘든든한 식사’도 매우 중요합니다. 제때 식사를 하지 못했거나, 인스턴트 등의 불량한 식사만 해왔던 아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가이오 삼촌, 강철 후원자님은 아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이 담긴 따뜻한 식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채시곤 먼저 식사 봉사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실천 없이는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씀처럼 아이들을 위해 바로 발 벗고 나서주신 것이지요.

강철 후원자님은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엔젤스헤이븐과 함께하며 매번 진심 어린 봉사와 마음을 전달해 주고 계십니다. 후원자님의 따뜻한 진심은 아이들의 웃음을 만들어 주었고, 사랑과 나눔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했습니다. 엔젤스헤이븐은 앞으로도 강철 후원자님과 함께, 아이들이 사랑과 회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따뜻한 동행을 이어가겠습니다.

 

“내일은 늦으리, 누군가는 마중물이 되어야 합니다.”

“내일은 늦으리, 누군가는 마중물이 되어야 합니다.” 1080 1080 관리자

“내일은 늦으리, 누군가는 마중물이 되어야 합니다.”

가이오국수 강철 대표님 인터뷰 (1)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가을 저녁, 엔젤스헤이븐은 ‘가이오국수’의 대표님이신 강철 후원자님을 만났습니다. 은평구 맛집으로 유명했던 ‘가이오국수’는 어느덧 그 유명세가 점점 퍼져나가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 청주에도 지점이 생길 만큼 유명한 프랜차이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새로 생길 분점 때문에 하루 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강철 후원자님은 바쁜 와중에도 잠시 틈을 내어 엔젤스헤이븐에게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강철 후원자님과 아동푸른센터의 특별한 인연, ‘가이오 삼촌 데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드립니다.

 

 

Q.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글쎄요. 자기소개를 누굴 향해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리 아이들을 향한 거라면 그냥 소소하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이오 삼촌’? 가이오 삼촌이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삼촌 하면 친근하잖아요.

 

Q. 엔젤스헤이븐의 정기 후원자이시자 ‘엔젤스 나눔가게’의 사장님이시기도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봉사와 나눔을 이어오고 계신데, 후원자님이 가지신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하는 강한 의지’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어머니의 사랑 덕분이죠.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 주셨어요.

초등학교 때 수요일마다 아이들끼리 예배를 드렸어요. 옆집에 목사님 딸들이 있었는데, 저희 형제랑 다 같이 모여서 어른들을 흉내 내며 소꿉놀이 하듯 예배를 드린 거죠. 그러면 부모님들이 헌금을 내라고 천 원, 이천 원씩 주셨어요. 그 돈으로 예배 때 하는 것처럼 똑같이 헌금을 모았어요. 그런데 모인 헌금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어머니께 물었더니 “그 헌금은 너희들이 쓰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 쓰는 거야.” 이렇게 알려주시더라고요. 마침, 동네에 쓰레기를 주우면서 생활하시는 할머니가 떠올랐고, 그 분께 드리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선 돈으로 직접 드리기보다는 겨울이니 목도리를 해드리면 어떻겠냐고 말씀해 주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죠.

목도리를 사기 위해 동생 둘을 데리고 백화점을 갔습니다. 버스로 한 정류장 스무 개 정도 나간 것 같아요. 할머니께 드릴 목도리랑 장갑을 사고 나서는 돈이 어떻게 딱 들어맞아서 차비만 남았었습니다. 돈도 다 썼고, 집에서 부모님이 기다리시니 얼른 돌아가야 하는데 하필 버스 정류장 옆에 불쌍한 할머니가 계시더라고요. 근데 예전에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 거예요. “얘들아, 만약에 주머니에 돈이 차비밖에 없는데 도움이 필요한 할머니를 발견했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할머니를 도와. 너희는 건강하니까 걸어와도 돼.” 그렇게 가르치셨는데, 하필 딱 그 상황이었던 거예요. 할머니께 차비를 전부 드리고 동생들과 같이 집까지 걸어갔습니다. 거의 한 2시간을 걸어간 것 같아요. 하늘이 다 깜깜해진 시간에나 집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혼났죠. 그런데 제가 “전에 엄마가 말씀해 주신 대로 차비밖에 안 남았는데, 버스 정류장 근처에 불쌍한 할머니가 아무것도 못 드신 것 같아서 차비 다 드리고 걸어왔어요.” 하니까 그때부터 혼내시지 않고 칭찬을 해주시더라고요.

그게 제 삶을 바꿔 놨어요. 기부라는 게 이런 거구나. 걸어가는 그 두 시간이 힘들지가 않았어요. 그냥 나에게 남은 걸 주는 게 아니라, 때로는 내가 손해 입을 수 있지만, 내 것을 나누어 줬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이 뿌듯함! 이건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 같아요. 저는 그 추억으로 지금까지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늘 남의 집을 전전하면서 살았고, 가난이 너무 익숙했어요. 저는 가난에 익숙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애환을 잘 알아요. 없는 것의 서러움도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이제 조금 넉넉해지고, 가진 게 생기다 보니까 그 사람들이 눈에 더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들한테 뭐가 필요하고, 어떤 때 뭘 줘야 가장 좋은 건지, 그 사람에게 어떤 것을 주어야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돈을 모으기보단, 생기는 대로 기부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어리석다.”, “네 형편을 먼저 생각해라.”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해요. 지금까지 기부한 걸 다 모으면 벌써 빚 같은 건 다 갚고, 소소하게 아파트에서 잘 살고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같은 이런 행복한 미소를 가질 수 없었을 거예요. 저는 기부를 하면서 많은 사랑을 얻었어요. 많은 사람도 얻고, 그 안에 사랑도 얻었어요. 

 

 

Q. 체인점들에 로열티를 받지 않고 대신 수입 일부를 기부하도록 하는 것도 후원자님의 남다른 ‘기부 철학’이 느껴집니다.

사실 체인점들에게 사업비를 받고 제가 기부해도 되고, 체인점들 이름으로 제가 직접 기부해도 됩니다. 근데 그렇게 하면 영광은 누구에게 가죠? 저에게 오는 거죠. 저는 그들에게 스스로 기부를 하는 경험을 주고 싶었습니다.

독수리가 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방법이 뭔지 아시나요? 절벽에서 그냥 밀어버리는 겁니다. 매몰차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 날 수가 없다고 해요. 크면서 몸무게가 점점 늘어나니까, 날 수 있을 때 날지 못하면 그 이후엔 날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이야기를 보고 교육은 때로는 독려하면서 하는 것보다는 과감한 실천과 경험을 통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체인점주들에게도 기부를 그렇게 가르쳐드린 거죠. 로열티 대신 그 돈을 기부하라는 게 아니라 “너희들이 기부하겠다면 로열티를 내가 포기할게.” 원래 뜻은 그거예요. 로열티를 기부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하기를 직접 선택한다면 저도 로열티를 포기하겠다는 거죠. “나는 기부가 삶인 사람이에요. 당신(체인점주)도 기부할 수 있겠어요?” 그분들이 기부하겠다고 하면 저는 로열티를 받지 않는 겁니다. 로열티를 받지 않겠다는 건 그들이 행한 기부 경험에 대한 칭찬이에요.

누군가는 마중물이 돼야 합니다. 그 마중물이 우선 내가 되겠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언젠가 제가 아닌 누군가 또 마중물 역할을 해줘야 되잖아요. 저에게도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한이라는 게 있고, 내 인생의 끝이라는 게 올 테니까요. 다음 주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 ‘전염’을 시켜야 해요. 그래서 우선 내 프랜차이즈를 통해서 ‘전염’을 시작한 거죠.

 

 

Q. 후원자님의 주변 분들은 이런 봉사와 나눔 활동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해주시나요?

사실 안타깝게 생각하는 눈빛들이 많습니다. 본인 빚부터 빨리 갚고 나서 하라는 말들도 많아요. 친구들이 이렇게 말하기도 해요. “장사 잘돼서 체인점까지 이렇게 늘어났는데, 네 형편은 왜 제자리야?” 친구들이 바라보는 저는 그냥 멈춰 있다는 거예요.

1990년대 ‘내일은 늦으리’라고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그때 유명했던 그런 가수들이 다 모여서 환경 오염에 대해서 깨우치는 앨범을 만들었어요. 말 그대로 “내일은 늦으리. 오늘 실천해야 한다. 내일 하자 하면, 내일은 늦는다.이런 내용이에요. 저도 똑같아요. 내일은 늦어요. 내일은 하나님이 내 눈을 뜨게 해주셔야 기회가 생기는 거죠. 오늘은 좀 힘드니까 내일 기부하자, 오늘은 좀 주머니 사정이 안 좋으니까 내일 좀 많이 하자, 그러면 늦어요. 이렇게 과감하게 내가 기부에 힘쓸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해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그것만 해도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가치를 느껴요.

강철 후원자님은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엔젤스헤이븐과 함께하며 매번 진심 어린 봉사와 마음을 전달해 주고 계십니다. 강철 후원자님과 아동푸른센터의 특별한 인연, ‘가이오 삼촌 데이’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음 게시물, 인터뷰 2편에서 계속됩니다.

선한 영향력의 시작, 자립준비청년 봉사회 ‘은플루언서’

선한 영향력의 시작, 자립준비청년 봉사회 ‘은플루언서’ 1080 1080 관리자

선한 영향력의 시작, 자립준비청년 봉사회 ‘은플루언서’

은평자립준비청년청, 은플루언서

 

은평자립준비청년청은 전국 최초의 자립준비청년 맞춤 지원기관입니다. 그리고 지난여름, 은평자립준비청년청에선 또 하나의 ‘전국 최초’가 탄생했습니다. 바로 전국 최초 자립준비청년 봉사회 ‘은플루언서’입니다.

8월, 꿈나무마을 강당에서 열린 ‘은평구·대한적십자사 은플루언서 봉사회 결성식’에는 봉사회 결성을 축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중심엔 우리 은평자립준비청년청의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결성식에서 김영후 은플루언서 봉사회 회장은 “많은 사회의 도움들을 받으면서 언젠가는 저도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풀 수 있길 바랐다”라고 봉사회 결성의 이유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엔젤스헤이븐은 인터뷰를 통해 은플루언서 결성의 비하인드부터 앞으로의 활동계획까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봉사동아리 ‘은플루언서’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후입니다. 은플루언서는 은평구에 거주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이 모여, 지역사회에 따뜻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트렌디한 봉사 동아리입니다.

 

Q. ‘은플루언서’가 어떻게 결성되었는지, 그 비하인드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은플루언서는 은평구의 ‘은’과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합성어로 ‘우리가 은평의 선한 영향력이 되자!’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입니다. 은평구에 거주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이 모여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자는 취지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자립준비청년이란 일반 가정이 아닌 아동양육시설 등에서 보호를 받으며 살다가 성인이 되어 시설 보호가 종료된 청년들을 말합니다. 우리 은플루언서는 모든 구성원이 자립준비청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된 자립준비청년들이 누군가로부터 나눔을 받는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누군가에게 나누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결성되었습니다.

 

 

Q. 은플루언서’ 활동으로 벌써 여러 다양한 봉사를 진행하셨습니다. 어떤 봉사가 특히 기억에 남았고, 자립준비청년으로서 어떤 의미로 다가왔다고 생각하시나요?

자립준비청년으로서 같은 자립준비청년에게 보낼 키링 만들기 봉사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단순히 물건을 만들어 전달하는 활동이 아니라, ‘우리도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활동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키링이지만, 그 속에 담긴 저희들의 진심이 또 다른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 활동을 통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걸 다시 느꼈고, 앞으로도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Q. 앞으로 ‘은플루언서’가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또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라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앞으로 우리 동아리는 자립 준비를 해본 경험이 있는 선배와 자립을 준비해 나가는 중인 후배가 서로 소통하며 단합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아동양육시설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누군가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이들이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마음을 열고,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걸 느낌으로써 상처받은 마음과 자아존중감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사회에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자립준비청년’은 도와줘야 하는 대상일 뿐이라는 편견을 깨어 내고 선한 영향력의 중심, 주체로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플루언서는 11명의 자립준비청년들, 그 자신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모인 봉사회입니다. 여태 자라면서 받아왔던 지역 사회의 도움을 잊지 않고, 자신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다시금 봉사를 이어 나가려는 이 청년들의 의지는 나눔이 만든 따뜻한 선순환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올여름에 결성된 은플루언서는 벌써 취약계층을 위한 이끼볼 만들기부터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 복구까지 다양한 봉사 현장에 참여하며 선한 영향력을 곳곳에 퍼뜨리고 있습니다. 은플루언서라는 그 이름처럼, 은평 그리고 나아가 전국의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퍼트릴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함께라서 더 든든한, 꿈드림 또래멘토단

함께라서 더 든든한, 꿈드림 또래멘토단 1080 1080 관리자

 

함께라서 더 든든한, 꿈드림 또래멘토단

은평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 꿈드림 또래멘토단

 

또래멘토단, 왜 시작되었을까요?

매년 늘어나는 학교 밖 청소년의 수만큼, 은평구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에 새로 등록하는 청소년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꿈드림에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꿈드림을 찾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끊기고, 다시 센터를 찾지 않는 청소년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꿈드림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며칠 간의 상담과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찾아낸 답은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마음 아픈 이야기였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요.”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2023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학교를 그만둔 주요 이유는 우울·불안 등 심리적 어려움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매 조사마다 그 비율은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꿈드림은 이렇게 힘겨운 마음을 안고 찾아온 청소년들이 이 공간에서마저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청소년들이 힘들 때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으로는 부모님(76.2%)이 꼽혔고, 그다음이 친구·선후배(66.0%)였습니다. 형제·자매(32.5%)보다도 친구에게 더 많이 의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학교를 그만두었기에 또래 관계가 단절되거나 고립될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도 크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여서 꿈드림 ‘또래멘토단’의 아이디어가 시작되었습니다.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 또래멘토단

또래멘토단은 꿈드림에 먼저 들어와 잘 적응한 청소년들이 새롭게 등록한 청소년들의 ‘멘토’가 되어,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며 친밀감을 쌓아가는 소그룹 활동입니다. 멘토들은 직업체험이나 문화체험 등 여러 활동에 함께 참여해 멘티에게 먼저 다가가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2024년 시범운영 당시, 단 5명의 멘토로 시작한 이 활동은 청소년들의 큰 호응 속에서 자리를 잡았고, 점차 참여 인원이 늘어나 2025년 현재는 10명의 청소년 멘토가 활발히 활동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친구, 선배

지난 8월엔 꿈드림 또래멘토단에겐 특별히 소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바로 선배와의 만남, ‘홈커밍 데이’입니다. 이날 은평구 꿈드림을 거쳐 간 선배 학교 밖 청소년들이 다시 센터를 찾아와, 학교 밖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그 이후의 삶을 진솔하게 들려주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 중 하나는 바로 미래 진로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뒤, 진로와 진학을 스스로 계획해야 하는 막막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홈커밍 데이에서 만난 선배들의 모습은 “학교 밖에서도 충분히 다양한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본보기 그 자체였습니다. 많은 어려움과 갈등을 지나왔지만, 지금은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선배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큰 용기와 가능성을 심어주었습니다.

이날 청소년들은 선생님에게는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을 선배들과 나눌 수 있었고, 선배들은 같은 경험을 지나온 이들만이 건넬 수 있는 조언과 위로를 전했습니다. 홈커밍 데이는 또래멘토단이 단순한 친구가 아닌, 서로의 삶을 지지하는 작은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

올해 또래멘토단은 홈커밍 데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추억을 함께 쌓아가고 있습니다. 동물원을 방문하기도 하고, 일상 속에서 더욱 친해질 수 있도록 보드게임 모임을 꾸리기도 했습니다. 또래멘토단만을 위한 MT도 계획되어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함께 웃고 놀며, 자연스럽게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꿈드림을 찾은 신규 청소년들은 이제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더라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안심돼요.”

또래멘토단은 단순한 프로그램을 넘어, 서로를 지지하고 연결해 주는 든든한 관계망이 되고 있습니다. 이 안에서 맺어진 우정은 꿈드림 안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이어지며, 앞으로의 삶에서도 힘이 되는 소중한 동행이 될 것입니다.

 

실패가 아닌, 새로운 시작

학교 밖 청소년들이 학교를 그만두는 사유로는 학업 부적응, 성적 부담, 학교 폭력과 따돌림 등의 다양한 원인이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학업과 진로의 단절로 이어지지 않도록 돕는 일입니다. 또래 관계의 고립과 우울로 이어지지 않도록, “학교 부적응자”라는 낙인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곁에 함께해주는 것이 바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의 역할입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이름은 때로 누군가에게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또래멘토단 안에서 이들은 서로의 아픔과 경험을 가장 먼저 이해해 주는 친구가 되고, 함께 도전하며 성취를 맛보는 동료로 자라납니다. 작은 활동 속에서 쌓인 자신감은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용기로 이어지고, 서로의 지지를 받으며 사회 속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힘을 길러갑니다.

은평구 꿈드림 또래멘토단은 오늘도 누군가의 손을 잡으며 말합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우리와 함께라면, 새로운 시작은 언제든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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