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가기 좋은 10월, 명동 1898광장에서 링크마켓 잇-장이 열렸습니다.
잇-장은 ‘잇다’의 ‘잇’과 ‘장터’의 ‘장’을 합성한 말로,
장애를 가진 사람의 가능성을 사회와 연결하는 예술&디자인 마켓입니다.
올해에는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과 예술단체 로사이드를 중심으로
대안학교, 디자인연구소 등 다양한 주체가 협동하여 풍성한 볼거리를 준비했는데요.
눈으로 대충 보아서는 알 수 없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시장 구석구석 숨어있답니다.
지금부터 잇-장을 둘러보며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볼까요?
#로사이드 #래;코드 #틈사이로
#은평씨앗학교 #Contio #Goodjob!
#GrapeLab #J&JKitchen&company #VRing
사람의 가능성과 사회를 연결하는 디자인마켓
잇-장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던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의 ‘틈사이로’는 지적·자폐성장애를 가진 청년들이 중심으로 활동하는 창작예술그룹입니다. 4년 전, 성인발달장애인의 평생학습 과정 중 다양한 진로경험 확대의 하나로 예술교과를 개설하고 캘리그라피 교육을 했던 것이 시작입니다. 이후 발달장애인의 창조력과 표현 가능성에 주목해 별도의 그룹으로 독립했습니다. 현재는 창작자 15명과 캘리그라피, 그래픽디자인, 다양한 수공예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창작자들의 작품으로 전시회와 워크숍을 열고, ‘디자인’을 키워드로 예술단체, 기업, 공공기관과 협력하여 ‘문화여가’를 넘어 ‘일’로 발전될 가능성을 실험하고 확장합니다.
사람은 멀리서 바라보면 덩어리가 됩니다. 누군가를 단지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사람이 가진 다양한 모습이 보이고 개성과 매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틈사이로’는 사회로 인해 덩어리가 되었던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가까운 거리에서 다시 살펴보고, 예술을 매개로 각자가 가진 개성과 매력을 표현하려 합니다. 나아가 사람을 가까운 거리에서, 긴 시간 바라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 사회에 이야기하는 활동을 이어갑니다. 아무것도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틈’ 사이로 작은 생명이 뿌리 내리고 싹을 밀어 올리듯, 청년들을 예술로서 있는 그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틈사이로, 로사이드가 함께하는 ‘우리들의 손’은 놀이와 예술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공동의 창작물을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장애를 떠나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고 연결된 과정의 결과를 전시하고 디자인 상품으로 소개했습니다.
우리의 전시물 중에 색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 같은 커튼은 틈사이로 이형준 창작자와 고혜실 플레이서포터의 창작물입니다. 이형준 창작자는 조심스럽고 수줍음 많은 고양이 같은 성격을 가졌어요.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고, 말을 걸면 슬쩍 도망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어디선가 꺾어가지고 들꽃, 물 한 컵, 정성스레 오린 도일리 한 조각을 선물하며 애정 어린 마음을 전달하곤 합니다.
선물 받은 도일리 조각이 수북하게 쌓일수록 우리의 생각은 확고해졌습니다. ‘도일리는 형준씨의 분신과도 같은 것! 도일리가 빠지면 형준씨 작품이 아니다.’ 플레이서포터들은 쉽게 상하는 종이가 아닌 재료를 찾다가 와이셔츠 칼라에 쓰이는 빳빳한 심지 천을 발견했고, 모양을 오리고 칠하는 과정을 함께 했습니다. 손바느질을 좋아하는 고혜실 플레이서포터는 형준씨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조각을 잇고 이어 길 다란 커튼으로 완성시켰습니다.
이들이 함께 보낸 일 년의 시간을 어떤 말로 설명하면 좋을까요.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교육하는 일은 분명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그저 상대방이 지닌 고유하고 섬세한 결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살려내는 일이라고, 조금 복잡하지만 그렇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Ⅱ 틈사이로 창작자와 함께하는 체험공방
첫 날, 명동 1898광장에 있는 래;코드에서 안윤주 창작자의 체험공방이 진행되었습니다. 래;코드는 버려진 옷을 다시 디자인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패션브랜드인데요, 디자인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잇-장의 취지에 공감하여 창작자와 함께하는 체험공방을 열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3년 동안 텃밭을 가꾸었습니다. 직접 기른 채소로 요리를 하고, 멧돼지가 고구마를 파먹어서 허탕만 치고 돌아온 날도 있었지요.’
손재주가 뛰어난 윤주씨는 텃밭에서의 기억들을 그림으로, 양모펠트로 재현합니다. 자주색 비트, 보라색 가지, 연두색 완두콩, 주황색 당근… 어느새 채소들이 쌓이고 쌓여 바구니를 가득 채웠습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 체험공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참여자들은 텃밭 이야기를 모티브로 양모펠트 비누집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양모를 바늘로 콕콕 찔러 친환경 비누를 감싸주면 되는데요, 완성된 비누집은 샤워 볼 대신 사용할 수 있답니다. 윤주씨는 ‘양말목 컵받침 만들기’에 이어 두 번째 체험공방을 진행하였는데, 이번엔 대본도 만들고 말하는 연습도 하며 강사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더불어 참여자분이 만든 완두콩이 별로라며 다시 만들게 하는 여유까지~ 윤주씨의 카리스마 넘치는 진행으로 모두 알록달록 예쁜 비누집을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협동에 대한 새로운 상상 : 장애-놀이와예술-일을 잇는 커뮤니티 만들기
26일 목요일엔 잇-장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깊이를 더하는 포럼이 진행되었습니다. 기계가 아닌 ‘인간 고유의 일’은 무엇인가 질문하는 가운데 창의성을 주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사회. 이 사회안에서 장애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보고 장애와 그들의 놀이, 예술을 새로운 ‘일’로 이어나가는 방향을 고민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달장애인의 예술 활동은 생산성이 없는 일, 또는 치료나 여가정도로 한정되어버립니다. 특히 틈사이로와 같은 성인기 장애인은 취업을 이유로 예술 활동을 등한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술 안에서 장애는 문제가 아닌 개성으로 발휘됩니다. 잇-장은 그 개성을 드러낼 좋은 기회였습니다. 포럼에만 70명 남짓한 사람이 모여 3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고, 9일 간의 전시장엔 약 1,400여명의 사람이 오고가며 발달장애인의 예술을 바라봤습니다. 이런 개개인의 경험이 모여 언젠가 생산적이지 못하단 이유로 배척받던 발달장애인의 싱그러운 창의력이 사회의 틈 사이에서 꽃 피워지길 기대합니다.
“우리나라는 문제해결보다 문제해결에 대한 ‘우리의 역할과 기여’가 핵심성과지표로 잡혀있는 경우가 많다. 확보하게 되는 자원과 사회의 관심이 1/n으로 나눠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협력은 분명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1×n으로 보기 시작하는 주체가 생길 때, 집합적 임팩트는 순식간에 구현될 수 있다. 우리 조직과 우리가 제안하는 해결책만으로는 사회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느끼는 건강한 에고를 갖춘 주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한국에서의 집합적 임팩트의 사례와 성과도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 정지연(MYSC 사회혁신랩 책임컨설턴트)”
“중요한 것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어떤 작은 목소리, 표현 속에 담긴 한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고 이를 마주하는 것, 그 과정을 함께 하는 이들이 좀 더 자유롭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쓸모의 관점에서 가치 없다고 생각했던 존재와 일들이 어떻게 사회에 매력적인 색채를 더하게 되는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고재필(로사이드 대표, 잇-장 기획자)”
“노동의 재구성을 통해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가 구축될 때에만, 노동은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놀이’가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자신의 삶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시민권으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도현(장애인언론 비마이너 발행인, 장애학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