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메뉴
후원하기 후원정보조회 1:1문의 뉴스레터신청

스토리

전체보기 사업소식 아름다운 사람 칼럼 은평재활원 새집짓기 프로젝트
 

게시물 내용

제목 "제가 받았던 도움 그대로 누군가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작성자
관리자 
이메일
angelshaven@angels.or.kr 
작성일
2017-05-31 오전 11:51:20 
조회수


제가 받았던 도움 그대로 누군가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든든하게 엔젤스헤이븐을 받쳐주고 있는 박종채 후원자

1959년 문을 연 엔젤스헤이븐은 긴 역사만큼 오랜 지지자와 후원자가 많습니다. 박종채 후원자도 그중 한 명입니다. 20년 넘게 한달도 쉬지 않고 후원을 해온 그는 다른 국제NGO, 교회 등에도 꾸준하게 도움의 손길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올 초 꾸준히 결연후원을 하며 관계를 지속했던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자 박종채 후원자 가족은 대학 입학금을 보탰습니다. 사실 그는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된 은퇴자지만 퇴직 후에도 후원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받았던 도움을 갚고자 시작한 후원은 이제 한 아이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나눔의 선순환에 참여하다

“제가 학생시절 선생님들 통해서 여러 도움을 받았거든요. 저는 교사가 아니니 같은 방법으로 학생을 돕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때 ‘후원’이 빚을 갚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아내가 동의해줘서 시작했습니다. 결연후원은 2008년 정도부터 한 거 같습니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란 박종채 후원자를 돌봐준 건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중학교 시험을 치도록 선생님이 집에서 숙식을 제공해주셨고. 가정교사 일자리를 마련해 안정적으로 공부할 터전도 만들어주셨다고 합니다. 대학진학 후에도 장학재단의 장학금을 받는 등 돌아보니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되돌려줘야 한다는, 되갚아 줘야한다는 부채의식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저희 큰 아이와 엔젤스헤이븐에 봉사활동하러 왔다가 은평천사원을 알게 되고 여기서 자라는 오누이와 연결이 되었어요. 어차피 ‘후원’를 시작한 김에 누군가를 지정해서 도와준다면 도움 받는 아이도 기대감을 가지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저도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어느 어린이날 은평천사원을 방문해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에 나섰습니다. 아이들에게 가고싶은 곳을 묻자, 후원자님 집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집에 데려와서 밥도 해주고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던 기억이 선합니다. 여러 사정으로 집에 자주 데려오지 못한 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결연후원 : 아이가 독립하는 순간까지 꾸준히

그렇게 후원하던 아이 중 하나가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만 후원하려던 게 저희 생각이었어요. 성인이 되면 스스로 세상을 사는 방법도 배워야하고, 완전히 독립시켜주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신에 대학에 입학하는 때 입학금의 일부를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wzimageseditortag

“사실 대학 입학금은 후원은 저희 큰 아이 작품입니다. 제가 후원하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는데요. 큰 아이가 선뜻 나서 이번에는 자기가 돕겠다고 했어요. 몇 년 후 동생이 대학을 간다면 그때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컴퓨터 공학과로 진학하는 아이에게 앞으로는 후원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꽤 성숙한 청년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박종채 후원자. 바르게 자라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제가 교회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자기도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다행이었어요. 나중에 언제고 더 좋은 후견인 만날 기회도 있으니까요. 동생의 꿈은 간호사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간호사는 부족하다고 해요. 시골로 갈수록 더 그렇고요. 이 아이도 생각이 괜찮은 친구에요. 그래서 간호학과 진학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한다고 충고했습니다.” 

장기 후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가족’

박종채 후원자의 꾸준한 후원은, 아이들이 구김 없이 자라는데 일조했습니다. 그는 IMF와 직장 은퇴를 지나는 중에도 후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봉급생활자로 살았는데요. 은퇴하고 나니 생활비가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어요. 가장 먼저 줄일 수 있는 생활비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남을 위한 거잖아요. 그래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언제까지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계속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퇴직 후에도 후원금을 줄이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살림하면서 한 번도 기부금을 줄이자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는 아내. 오히려 박종채 후원자는 형편에 따라 후원계속을 고민했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돕자는 말을 할 때 아내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후원이) 저희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교육적인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왔어요. 이번에 큰 아이가 등록금 후원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며 부모가 누군가를 도와온 것에 대해서 자신도 공감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wzimageseditortag

부모님을 닮아 자녀들도 다른 NGO의 후원자고, 주변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이 생기면 나선다고 합니다. 부모가 주변을 돌아보고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야한다고 말로만 설교만 했다면 아이들은 그게 옳다고는 생각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라고 합니다. 직접 가진 것을 나누는 걸 보며 자란 자녀들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박종채 후원자의 둘째 자녀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NGO에서 다문화 쪽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진로를 선택하고 자신의 인생의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돕는 부모를 곁에서 본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어느 단체에 기부를 하고 누군가를 돕는다고 말하는 걸 꺼려했어요. 자기 과시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주변에 얼마나 도움이 필요한지 몰라서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 얘기를 듣고 여건이 되는 사람을 좋은 일에 동참시키는 게 더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단순 후원자를 넘어 인생의 멘토로

박종채 후원자는 양육시설에서 자라면서도 본인이 꿈을 충실하게 살아온 아이들이 대견합니다. 부모 없이도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전 작은 도움을 줬는데 그래도 유익한 결과를 낳았다는 게 뿌듯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지금은 그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받은 도움에 대해 고마워하고, 그 마음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되돌려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하고 있어요.”

“물질적인 지원은 더이상 하지 못하지만요. 큰 일이 닥치거나, 상의할 사람이 필요하면 제가 멘토가 돼서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감당해야겠다 생각해요. 요즘 대학에서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하거든요. 이런 시간이 즐거워요. 이 학생들도 우리나라에서 좋은 인상을 받고 선의를 경험하면 누군가에게 또 선하게 대해주지 않을까요 ”

wzimageseditortag

목록